석유수출기구(OPEC)의 감산 불발 후폭풍으로 유가가 30달러대로 떨어지자 그간 오일경제에 의존해 성장해왔던 산유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 러시아는 부도 위기에 내몰린 에너지기업 구제를 위해 중국에 돈을 빌리러 나섰고 중동 산유국들은 재정 확보를 위해 사상 초유의 증세에 나섰다. 저유가 추세가 고착돼 경제 파탄으로 이어질 경우 사회적 혼란과 정정 불안이 가중돼 베네수엘라 등 남미 산유국들처럼 정권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산유국 사이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내년에 10억달러(약 1조1700억원) 규모의 위안화 표시 국채 발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7일 전했다. 그간 일부 러시아 은행들이 역외시장인 홍콩에서 위안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기도 했지만 러시아 정부가 위안화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은 가스프롬 등 러시아 에너지기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러시아 국영기업들은 최근 유가 하락에다 서방의 경제제재로 달러와 유로로 채권을 발행할 수 없어 자금줄이 막힌 상태다. FT는 "위안화로 돈을 빌리면 결국 달러로 다시 환전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커진다"며 "그럼에도 러시아가 중국 돈을 빌리려는 것은 유가 급락으로 내년도 상황이 상당히 암울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 최대 원유수출국 중 하나인 말레이시아 정부는 계속되는 유가 하락 때문에 내년에 70억달러(약 8조2480억원) 정도의 재정수입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유 수출은 말레이시아 재정수입의 60%를 차지한다. OPEC 감산 합의 불발로 지난 7일 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깃도 하루 사이 1% 가까이 급락하는 등 산유국 통화가치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뱅킹그룹의 쿤 고 외환전략 전문가는 "지금 같은 유가 약세가 계속된다면 말레이시아 재정은 1997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펀치를 맞고 비틀거릴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OPEC 감산 논의를 무산시킨 걸프협력회의(GCC) 6개 회원국도 저유가 강펀치에 휘청거리긴 마찬가지다. 일부 국가들은 사상 처음으로 부가가치세 도입을 선언했다. 유니스 하지 알쿠리 아랍에미리트(UAE) 재무차관은 "GCC 각 회원국 재무부 대표가 며칠 전 모여 부가세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며 "3년 안에 부가세 신설을 담은 세제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세금이 없는 나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UAE가 과세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이 쪼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인권 탄압이 심한 GCC 국가들은 그간 오일머니를 토대로 국민에게 대규모 복지와 비과세 정책을 펼치며 정권을 유지해왔다. UAE는 이달 들어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연료보조금을 폐지하고 휘발유 가격을 24% 올리는 비상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년 같으면 벌써 적정 유가를 예상해 세입·세출을 담은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했을 시기지만 논의조차 못하고 있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복지나 보조금을 줄여야 하지만 쉽지 않은 선택이다. 

왕권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사우디 정부의 적자 규모는 13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19.5%에 달할 전망이다. 적자를 막기 위해 최근 1년 새 외환보유액에서 915억달러를 인출했고 이례적으로 매달 53억달러 규모의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 사우디가 빚을 내가며 대규모 적자재정을 감수하는 것은 최근 남미 좌파정권 몰락에서 보듯 민심 이반이 정권교체로 이어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개발 원유가 매장된 베네수엘라는 6일(현재시간) 총선에서 지난 16년간 집권한 통합사회주의당(PSUV)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이 야권 연합인 민주연합회의(MUD)에 패했다. 

남미 최대 경제대국인 브라질도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고 대규모 재정축소안을 발표하자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 위기로 내몰렸다. 이들 남미 국가도 중동 산유국들과 마찬가지로 그간 원유를 바탕으로 재정을 연금과 복지에 쏟아부었는데 결국 유가 급락으로 재정이 파탄난 후 민심을 잃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사우디 등 중동 부국들은 인권 탄압과 테러 등으로 민심이 불안한 상황에서 복지와 재정 축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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