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세 겨울에 들어섰음을 실감했던 지난 30일 찾은 은평구 신사동. 응암역 1번출구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을 전신주와 신호등, 게시판 등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빌라 전단지 광고’가 먼저 맞는다. ‘신축빌라 급매’, ‘빌라 원가정리’, ‘파격 특가 분양’ 등 갖가지 문구의 전단지들이 비어 젖어 뭉개지고 바래진채 거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응암역 주변에 위치한 공인중개업소 유리벽에 붙어 있는 ‘빌라급매’ 전단지도 쉽게 눈에 띈다. 인근 온누리공인 관계자는 “올해 들어 은평구 쪽에 빌라 공급이 특히 많았다”며 “당장 가격이 하락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공급이 워낙 많다 보니 가격 조정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빌라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도권 빌라 인허가 물량은 2003년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사진은 은평구 신사동 일대에 붙어 있는 신축 빌라 전단지 사진.
주택 공급과잉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서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빌라(연립ㆍ다세대)에 대해서도 공급과잉 우려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올해들어(1~10개월) 지난 2002년이후 최대 물량의 빌라가 공급된 것으로 나타나 걱정은 커지는 상황이다. 빌라 가격하락이 당장 현실화 되지는 않고 있지만 내년 들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견이 현장에서 나온다.
이날 응암역에서 내려 골목으로 들어서자 준공을 끝낸지 얼마되지 않은 듯 보이는 새 건물 하나가 건물 한가득 분양현수막을 붙여놓은 모습이 보인다. 그 건물 건너편에는 가림막을 가린채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고, 해거름이 깔려 미등이 켜진 건물안으로 인부들이 드나들고 있다. 공급과잉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빌라는 지어지고 있고, 인허가 물량은 쏟아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통계누리를 보면, 올해(1~10월) 수도권내 빌라 인허가 물량은 9만5206가구(연립ㆍ다세대 합)로 지난 2003년(연간)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서울에서만 총 4만7803가구(1~10월)가 공급돼 10개월치만으로 지난해(3만4613가구)를 압도하고 있다.
당장은 가격이 조정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응암역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신축 빌라 전용 66㎡은 2억4000만~2억5000만원 정도. 땅값이 올라 빌라 분양가는 올해초보다 500만~1000만원 정도 올랐다는 설명이다. 응암역 인근 장안 공인 관계자는 “역세권의 경우는 분양을 해놓으면 곧잘 나가고 있어 사정이 다르지만, 역세권에서 벗어난 곳에 지어진 빌라의 경우 일부 세대가 분양이 안돼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있다”며 “전세난을 피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공급이 너무 많이 된 측면이 있다. 특히 올해초 전세난을 피해 심리적 안정차원에서 신축 빌라를 샀던 사람들이 1000만~2000만원 낮춰 빌라를 급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서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강서구도 공급과잉으로 가격하락 우려가 나오는 것은 비슷하다. 강서구 방화동의 신화공인 관계자는 “올해 빌라 지을 땅을 찾는 사업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땅값이 3.3㎡당 1100만원에서 1500만원 수준으로 올랐다”며 “이 가격이 빌라 분양가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 센터장 역시 “빌라가 아파트의 대체재로 여겨지면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무인택배시스템이 갖춰지는 등 고급화되는 분위기”라며 “이에 따라 분양가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이런 상황에서 공급과잉이 되면 가격 조정은 뒤따를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빌라공급이 많아지고, 이에 급매물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은 전세난의 후폭풍이라고 보고 있다. 박원갑 KB국미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경기침체가 이뤄지면 취약계층이나 취약 상품이 영향을 먼저 받기 마련”이라며 “전세난으로 대출을 많이 받은 빌라를 구매한 서민들이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국내 부동산시장에 먹구름이 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2017년 부동산 위기설’인데요.
실체가 뭘까요?
먼저 지난 26일 발표된 한국은행 ‘지역경제 보고서’부터 보죠.
◇한은 “2·3년 후 지방부터 집값 조정”
한국은행이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최근 주택시장 상황 및 전망’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국내 부동산시장 전문가 25명과 전국 부동산 중개업소 307곳이 대상이었는데요.
이에 따르면 전문가 모두가 “내년에도 서울·수도권 집값이 오를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5% 이상 오른다”는 응답도 16%에 달했고요.
그러나 지방은 달랐습니다. 전문가 33.3%가 “내년 지방 집값이 0~5%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 절반 이상도 “내년 충청권과 대구·경북권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고 답했는데요. 그간 주택 공급이 많았거나 집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자료=한국은행 |
|
특히 전문가 83.3%는 “앞으로 2~3년 후 지방 집값이 조정될 수 있다”고 예상했는데요. 수도권(58%)보다 부정적 인식이 컸습니다. 현지 중개업자 80%가량도 강원·제주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한 지방의 집값 조정 가능성에 공감했죠.
요약하면 이렇군요. 최근의 ‘주택 공급 과잉’과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2~3년 뒤부터 지방발(發) 부동산 침체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KDI “올해 16년 내 최대 분양…공급과잉 우려↑”
사실 2017년 위기론은 한국은행이 처음 거론한 것은 아닙니다.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지난달 말 내놓은 ‘부동산시장 동향’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는데요.
위기론을 낳은 핵심 배경은 ‘공급 과잉’입니다. 요즘 필요 이상으로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으니 입주 시점이 되면 집이 남아돌아 집값이 내릴 것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논리인데요.
| △자료=KDI |
|
KDI에 따르면 올해 전국의 아파트 분양 예정 물량은 49만 1594가구로,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입니다. 2000년 이후 연평균 분양 물량은 28만 3666가구였는데요. 평균치를 20만 가구 이상 웃도는 겁니다.
전국의 아파트 분양 물량은 2007년에도 29만여 가구에 불과했는데요. 당시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규제를 피하려는 건설사의 ‘밀어내기 분양’이 판쳤던 때죠. 이때 분양했던 아파트가 대거 입주를 시작한 2008년 이후 전국 곳곳에 불 꺼진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계약 해지, 입주 거부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올해 분양 물량은 당시보다도 1.7배 정도 많죠. KDI는 올해 분양한 아파트가 입주하는 2~3년 후 당시와 같은 후유증이 예상된다고 경고한 이유입니다.
◇정부도 “공급 조절 필요해”
정부 인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데요.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5일 취임 후 주택업계와의 첫 간담회에서 “앞으로 신규 주택 수요, 지역 여건 등을 고려해서 적정한 수준의 주택 공급이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간의 부동산 경기 부양 기조를 뒤집고, 공급량 조절을 시사한 건데요.
사실 국토부는 2013년 장기주택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향후 10년간 적정 주택 공급 규모를 연평균 39만 가구로 추정했었습니다. 하지만 올해 들어 10월까지 전국의 주택 건설 인허가 실적이 벌써 60만 4340가구에 달하고 있는데요.
지금 추세대로라면 올해 인허가 물량은 1990년 이후 15년 만에 70만 가구를 돌파할 전망입니다. 1990년은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호 건설 계획에 따라 분당·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에 아파트가 대거 들어섰던 때였죠.
| △강호인 국토부 장관 [사진=국토교통부] |
|
◇금리 인상·대출규제 강화도 초읽기
또 다른 위기 요인도 있습니다. 미국 금리 인상과 이에 대비하려는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관리 강화 방침인데요. 이 같은 요인들이 맞물리면 부동산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식으리라는 전망도 적지 않습니다. 주택 구매 심리가 얼어붙어 2017년 이전에 침체 조짐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주택 경기가 불황·회복·호황·후퇴기를 거치며 순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하지만 부동산시장의 문제는 냉탕에서 온탕, 다시 온탕에서 냉탕으로 바뀌는 변덕이 무척 심하다는 점인데요. 여기에 잊을 만하면 ‘대책’을 내놓고 부채질한 정부 책임이 없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급변하는 경기는 결국 집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피로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요. 지금의 위기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말고, 이제야말로 장기적인 수급 조절 방안 등 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부동산 ‘정책’을 고민해야 할 시점 아닐까요.